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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서노트/지대넓얕0] 질문을 멈추게 하는 '파잔'
    독서 노트 2020. 5. 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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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lephantPhoto by Nam Anh on Unsplash



    p.4


    파잔(phajaan)은 코끼리의 영혼을 파괴하는 의식이다. 야생에서 잡은 아기 코끼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둔 뒤 저항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몇 날을 굶기고 구타하는 의식. 절반의 코끼리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지만, 강인한 코끼리는 살아남아 관광객을 등에 태우고 돈벌이의 수단이 된다.

    코끼리는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없을 테지만, 그들의 영혼은 산산이 부서지고 본능의 심연에서 어렴풋하게 냉혹한 세계를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제 엄마를 찾아선 안 된다는 것과, 몽둥이의 고통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코끼리가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단순하다. 자유를 향한 자기 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척하고, 세상이 혼란스럽지 않은 척하는 것이다.



    P.173


    당신과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던져진 세계 속에서 자기만의 존재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많은 시간을 헤매었다. 길은 가려져 있었고,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주저앉히려 했다. 우리가 세상의 부조리에 저항하려 할 때 가정과 학교와 사회는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질문을 멈추라. 그것은 먹고사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의 말을 따랐다. 내 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척했고, 세상이 혼란스럽지 않은 척했다. 모든 인류가 그러했듯 우리는 어느 곳에서는 매 맞는 코끼리였고, 어느 곳에서는 몽둥이를 든 자였다.







    생각정리


    고등학교 3학년 때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생활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나는 그저 열심히 공부만 하는 아이였다. 부모님의 기대와 주변에 의해 만들어진 목적을 위해 그저 열심히 공부만 했었다. 왜 해야하는 지도 모른체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좋은 대학가면 내 인생이 잘 되겠지', '남들이 좋은 대학에 가려고 하는 이유가 있을거야'라는 생각으로 고등학교 3년을 버텨냈다.


    어느 대학을 갔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질문을 멈췄다는 것. 내가 무엇을 위해 지금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있고 어느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알려고 하지 않은체 그저 남들이 다 하고 있으니까 하는 맹목적인 공부를 하고 있었다. 대학 다음에 무엇이 있을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부모님이 원하시고 그게 부모님과 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으까.


    이 책의 처음 부분에 나오는 아기 코끼리가 우리나라 고등학생 같다고 느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나중에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멈춘체 그저 공부만 한다. 좋은 대학에 가면 선택권이 넓어지고 좋은 기회가 주어진다는 얘기만 듣고서 말이다.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주변 환경이 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기 때문에 다들 서울로 가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조금 달라졌다. 명문대를 나와도 취업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며, 이력서 100개를 돌려도 서류가 합격하는 곳은 몇 군데 안 된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인서울 대학이 아니면 현실은 더 괴롭다. 또한, 고등학교 때 해야할 질문들이 대학에 간다고 끝나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나는 누구고,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은 아이러니 하게도 대학에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학교 때 더 괴로워한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고, 성적에 맞춰 간 대학교에서 도대체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고민에 빠진다.


    이런 질문들을 조금 일찍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자신에 대해 질문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자 했다면.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왔다면 아마 대학교 때는 그런 질문에 대한 일부 답변을 가지고 방향을 정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질문 시기를 앞당긴다고 해도 질문이 쉽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누구는 현실적으로 공부에는 때가 있다며 고등학교 때의 질문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학교를 이미 가고나서 질문을 하는 것과 대학을 가기 전 질문을 통해 '어떤 대학에서 무엇을 위해 어떤 일을 해나가겠다고' 방향을 정하는 것은 다르다.


    대학교 다음엔 취업, 취업 다음엔 결혼, 그 다음엔 집 마련, 그 다음엔 자식 교육, 그 다음엔 노후대책...
    사회는 우리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은 먹고 사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어서 질문을 멈추라고 부추긴다. 간단하게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너도 그렇게 살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개개인에게는 자신만의 삶의 의미와 개인에게 주어진 환경이 다르고 나아가고 싶은 방향 또한 다 재각각이다. 획일화된 교육을 받는 것이 조금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 아래서 모두가 질문을 멈추는 것은 매우 큰 문제다.


    그러니 지금 만약 당신이 자신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면 괴로워 말고 질문을 계속해서 해나가기 바란다. 그 질문은 누군가는 생각도 못 할 것이고, 누군가는 늦게 깨달았다며 괴로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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